성동구립도서관에서 회원증을 만들고 처음 빌린 책.
오츠 이치의 1996년 데뷔작. 당시 그의 나이 17세.
9살 여자아이가 살해당한 후, 자신을 죽인 친구와 그녀의 오빠가 벌이는 일들을 담담하게 1인칭으로 서술하는 작품이다. 굳이 따지자면 1인칭 전지적 귀신 시점이려나.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게 본 것은 바로 그 담담한 서술이다. 9살 여자아이가, 자신의 죽음조차도 담담하다.
나는 균형을 잃고 그대로 가지에서 떨어졌다.
………
허공에서 좋아하는 샌들이 한쪽 벗겨진 것이 한없이 안타까웠다.
마지막으로, 나는 아까 디딤돌을 삼았던 커다란 바위에 등을 부딪쳐 죽었다.
콧구멍과 귓구멍, 평소에는 눈물이 나오는 부분 같은 몸의 구멍들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25p)
9살이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이런 서술을 한다는 것이 소름끼치면서도,
오히려 너무 어리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후회 같은것이 성인보다 적어서 가능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 후로 이어지는 서술은 위의 '자신의 죽음에 대한 설명'과 크게 다르지 않게 이야기한다. 자신을 죽인 친구와 자신의 시체를 은폐하려는 그녀의 오빠를 바라보면서 그들의 행동과 흘러가는 상황을 이야기할 뿐이다. 심지어 그들에 대한 분노도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시체가 숨겨지려다 실수로 발이 드러나게 되자 그것을 부끄러워 하는 정도이다.
또래 여자아이의 시체를 앞에 두고 남매가 당분간 시체를 숨겨두면, 최근 주변에서 일어나는 연쇄납치사건의 일종으로 여겨지지 않을까 라고 하는 부분도 오싹했다.
시체를 숨기려는 두 남매의 5일간의 사투, 그 아슬아슬한 상황들이 이어지고, 결국 완벽히 숨겨버리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약간의 반전을 포함한 채로. 개인적으로는 그 반전 - 미도리누나가 바로 그 연쇄납치범이라는 점과 납치대상이 켄을 닮은 아이들이라는 것 (스포일러)- 가 굉장히 맘에 들었다. 정신이 번쩍 들면서 앞에서 나왔던 내용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 뒤에 나온 단편 <유코>도 흥미로웠다. 본편이 자신의 사체를 담담하게 묘사해서 소름끼쳤다면, 유코는 자신을 바라보는 인형을 상상하며 소름끼치는 것이다.
아쉬운것은 이 작품을 쓴 작가를 모르는 상태로 봤었더라면 소름 쫙쫙 돋는 카타르시스를 느낄수 있었을텐데, 그 '오츠 이치'가 쓴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보니까 반전도 예상되고, 그런쪽으로 흘러가겠지~ 라고 생각해버려서 재미가 반감된것 같다.
그래도 두 편을 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언뜻 지루해질수도 있었지만 특유의 묘한 문체, 그의 단어 선택과 아름다움에 대한 묘사가 계속 나를 끌어당겼다.